[프란체스코 칠레아/오페라] 실체 없는 사랑의 비극, 오페라 <L'Arlesiana> 줄거리와 감상포인트
<L'Arlesiana>(아를의 여인)는 프란체스코 칠레아(Francesco Cilea)가 1897년에 발표한 오페라로,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희곡 <아를의 여인>을 원작으로 합니다.
이 오페라의 독특한 점은 제목의 '아를의 여인'이 무대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주인공 페데리코와 주변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서만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 페데리코(Federico): 순수한 청년, 아를의 여인에게 깊이 빠져 있음
- 로자 마마이(Rosa Mamai): 페데리코의 어머니, 아들을 걱정함
- 비베타(Vivetta): 페데리코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농가의 처녀
- 메티피오(Metifio): 아를의 여인의 실제 연인
- 발다사레(Baldassarre): 늙은 목동
- 이노첸테(L’Innocente): 페데리코의 지적 장애가 있는 동생
남프랑스 아를 지방의 한 농가. 페데리코는 아를의 여인과 결혼을 꿈꾸지만, 어머니 로자와 주변 사람들은 이를 반대합니다. 메티피오가 나타나 자신이 아를의 여인의 애인임을 밝히고, 이를 증명하는 편지를 보여줍니다. 페데리코는 큰 충격을 받고 절망에 빠집니다.
페데리코는 실의에 빠져 집을 나가고, 어머니 로자와 비베타가 그를 찾아 나섭니다. 비베타는 페데리코를 위로하며 사랑을 고백하지만, 페데리코는 아직 아를의 여인을 잊지 못합니다. 이때 페데리코는 자신의 고통을 담아 유명한 아리아 ‘페데리코의 탄식(Lamento di Federico)’을 부릅니다.
페데리코는 비베타의 진심에 마음이 흔들리지만, 메티피오가 아를의 여인을 납치하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집착에 빠집니다. 결국 페데리코는 절망과 환상에 사로잡혀, 어머니와 비베타가 보는 앞에서 창고(혹은 탑)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합니다.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아를의 여인은 페데리코의 집착, 사랑, 질투, 절망 등 인간 내면의 감정과 상처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관객은 실체 없는 인물에 대한 주인공의 집착과 그로 인한 파멸을 지켜보며, 사랑의 본질과 인간의 나약함을 성찰하게 됩니다.
2막의 ‘페데리코의 탄식(È la solita storia del pastore)’은 이 오페라의 백미로 꼽히며, 테너라면 누구나 부르고 싶어하는 명곡입니다. 사랑과 상실, 망각에 대한 절절한 감정이 담겨 있어, 오페라 전체의 감정선을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칠레아는 동시대 푸치니, 마스카니 등과 함께 베리스모(사실주의) 오페라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을 유지합니다. 극적이면서도 섬세한 감정 표현이 돋보이며, 남프랑스 농촌의 풍경과 정서가 음악적으로 잘 녹아 있습니다.
페데리코의 어머니 로자는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Esser madre è un inferno(엄마란 지옥이다)’라는 아리아에서 모성의 고뇌를 노래합니다. 가족 간의 사랑과 상처, 희생이 작품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비베타는 페데리코를 묵묵히 사랑하며, 현실적인 사랑과 헛된 집착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그녀의 존재는 페데리코의 비극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